본문 바로가기
Warm.insight/캐나다 일상 이야기

슬기로운 캐나다 대학 생활

by 캐나다 OT 젤라쌤 2020. 12. 19.

안녕하세요 젤라쌤이예요. 

 

코로나로 온 세상이 흔들거렸는데도 연말은 다가오네요. 

예전 같았으면 하루가 멀게 감사한 분들 찾아뵙고 인사드리면서 바빴을 텐데 올 해는 너무나 조용하게 저 자신과 가족들에게 집중하며 연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작업치료사 자격증을 다시 딴 스토리"를 주제로 계속 글을 포스팅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나름 너무나 힘든 시간이어서 부러 잘 돌아보지 않았던 시간인데 다시 되돌아보며 깨닫습니다.

이민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의 무지함과

이 길이 아니면 절대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했던 저의 미련함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냈구나.......

모두 나쁜 건 아니었구나......  

 

사실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언어였어요.

이곳에서 재활 쪽 치료사의 위상은 거의 의사와 비슷해요. 

 

먼저 캐나다의 교육 시스템을 살펴보면, 

대학 4년은 보통 기초 학문을 배우는 학과가 대부분이에요. 

생물학, 물리학, 심리학, 영어, 비즈니스처럼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본 지식을 쌓는 기간이지요.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어떤 전문 분야로 나아갈지 결정하고 석사 과정을 지원해요. 

 

캐나다에서 재활 분야인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그리고 저의 전공인 작업치료사는

의대를 지원하는 경쟁률 하고 거의 비슷해서 정말 똑똑하고 말 잘하는 아이들이 입학할 수 있는 과예요. 

 

그러니 외국에서 공부한 치료사들에게 아주 높은 영어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이 영어라는 것이 절대적인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여야만 늘 수 있는 일인데 저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지요. 

그래서 사실 영어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영어가 늘지 않는 다"는 것보다는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에 대한 근본적 고민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 방황을... 

 

그때의 저의 기분은 마치,

길을 알지 못하는 동굴에 갇혀있는 것 같았어요.  

손에 초 한 자루 쥐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고, 외롭고, 무섭고, 막막하고, 더 이상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 같은 기분....

하지만 포기도 못했죠. 그랬다면 패배감에 견디지 못했을 것 같아요.... 

미래가 안 보이는 막막함...... 그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암튼 영어 독학의 한계를 느낀 저는 혹시나 영어에 도움이 될까 싶어 드디어 College에 입학을 합니다. 

 

젤라쌤의 캐나다 대학생활! 

이전에도 포스팅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 일반 3년 과정이 아닌 1년 안에 마칠 수 있는 압축 코스를 지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만약 제가 준비하는 작업 치료사 자격증을 못 받는다 하여도, 

다른 치료사로 일 할 수 있는 backup 하나를 만들어 놓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일석이조의 선택이었어요!

 

그런데 딴딴따~~~~~~ 제가 또 놓친 것이 있었어요.

1년 과정이어서 "짧아서 좋다"만 생각했지,

3년 과정을 압축해 놓은 것이어서 "정말 빡셀 것"이라는 생각은 못한 거예요..... "이 바보야!" 

 

합격 후 시간표를 출력해 보니 수업이 아침 8시에 시작해서 하루에 4 ~ 5 과목 수업을 연속으로 듣고, 

저녁 6~8시 사이에 끝나는 거예요. ㅠㅠㅠㅠ 

그리고 학교도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어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것을 생각하면

6시에는 준비하고 나가야 하고, 도서관에서 숙제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 12시... 

 

앗!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코 찔찔이 둘은 어떻게 하나... ㅠㅠㅠ 합격을 포기해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시어머님 찬스! 

한국에 계시던 시어머님께 SOS를 쳤어요.

시어머님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의 선택을 지지해 주시면서 흔쾌히 캐나다에 와서 도와주시겠다는 거예요. 

사실 한국에서도 아이들 낳고 나서부터는 계속 시부모님과 함께 지냈고, 

부모님들이 아이들 양육에 살림까지 모두 도와주셔서 사실 공주처럼 살았거든요.

그런데 캐나다까지 와서 또 도움을 청하게 되었네요....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 

 

그렇게 너무나 극적으로 전 다시 14학번이 됩니다. 

맨 처음 대학을 갔던 날 얼마나 떨었던지... 

그때 전 아직도 영어 귀가 제대로 뚫리지 않았고,

20대 젊은이들(?)의 영어는 너무 빠르고 슬랭도 많이 사용해서 거의 최고 난이도의 리스닝 수준이기 때문에 

거의 50%도 제대로 안 들리고, 

College여서 그런지 한 학과에 학생 수가 거의 80명 ~ 90명... 

저의 영어는 너무나 어눌했고, 이미 기가 많이 죽어 있어서, 전 적극적으로 젊은 친구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했지요. 

 

다행히 같이 면허 준비하던 성격 좋은 선생님이 계셔서 전 정말 껌딱지처럼 꼭 붙어 다녔네요. 

지나고 보니 제 삶에 은인이 정말 많아요. 

그 선생님 아니었음 캐나다 대학 지원할 생각도 캐나다 대학 생활도 견뎌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 적극적인 선생님과 아마도 반에서 가장 착한 친구들이 함께 해준 덕분에 그룹 과제도 할 수 있었네요. 

 

다행히 그 학과의 내용은 제가 한국에서 이미 배운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수업을 따라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fast course 여서 하루에 나가는 진도 양이 어마어마했고, 숙제도 어마어마.... ㅠㅠㅠ

다른 친구들 1시간이면 하는 양을 전 영어로 해야 하니 시간이 적어도 3~4배는 더 걸리고, 

캐나다의 대학 생활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또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서 12시 1시까지 공부하고 통학하고 다니면서 지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시어머님이 도와주셨으니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엄마가 캐나다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면서.... 

 

하지만 또 제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입시 제도와 치열한 직장 생활을 10년이나 한 성실이 이미 몸에 배어있는 한국인 아닙니까? 

그래서 전 수업 전에 몇 시간을 걸려서 책을 미리 읽어가고, 수업시간에 단답형으로나마 존재를 알리며 답을 하고, 

그룹 프로젝트 때 거의 모든 아이디어와 일을 모두 해 가고, 시험공부를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장학금을 받고 장학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렇게 또 1년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앞만 보며, 쪼그라진 자아를 붙들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바라보며, 

하지만 그렇게 또 의미 있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곤 다음으로 전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국가 면허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이야기는 또 다음 이 시간에 더 자세히~~ 

 

혹시 외국에서 전문가로 다시 일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고 이 글을 작성합니다. 

반응형

댓글